죽음? 열반? 모르겠다! 영화 <사바하>


1.

 내용은 굳이 적고 싶지 않다. 사실 찾으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국내 영화 내용이다. 정말 무의미한 일이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죽음이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두려운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열반에 드는 것을 모든 것을 깨닫고 초월한 상태로 가정한다.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닌 깨달음 끝에 찾아오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제석의 밀교는 이를 거부한다. 그들에게 깨달음이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죽음을 뛰어넘는 것. 즉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뜻밖의 예언과 맞닥뜨린다. 그것이 태어나기에 이것이 태어나고, 그것이 죽으면 이것 또한 죽는다. 태어난지 100년후 태어난 곳에서 난 가장 약한 것이 첫 피를 흘릴 때 너는 죽을 것이다. 죽음을 뛰어넘어 진짜에 가까이 다가선 김제석이지만 예언된 죽음은 두려웠던걸까. 그는 곧바로 자신이 태어난 100년후, 1999년에 태어난 모든 여자아이들의 생년월일을 전부 기록해 조금씩 아이들을 죽여나간다. 경전에 적힌 알 수 없는 숫자들이 주민등록번호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은 그야말로 소름 그 자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욕심의 추악함이 단번에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김제석은 예언대로인 결말을 맞이한다. 자신의 정반대인 가장 약한 존재에 의해 가장 추악한 죽음을 맞이한다. 진짜라고 불렸던 그는 검은 털로 뒤덮인 채 타락해 죽고, 그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악에 가까웠던 존재는 탈피하여 티없이 깨끗한 모습으로 열반을 맞이한다. 결국 그를 죽게 만든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자체였다. 


2.

 죽음. 죽는다는 건 뭘까. 생명활동의 정지? 뭐 말로 표현하자면 여러가지 있겠지. 괜히 영화 보고 센치해져서 그런 생각 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왜? 왜 죽음이 두려울까? 죽은 후를 알 수 없기에? 각종 종교들은 사후세계를 말하지만 그런 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죽은 후는 결국 아무것도 없다. 그래. 그게 무서운 거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무의 세계가. 내가 죽은 후에도 세상은 흘러가지만 그 풍경에 나는 없다는 사실이. 지금 하고있는 이 생각이, 움직임이, 이야기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게.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건 뭘까. 그것조차 없는 세상이 무섭다. 뭐 어차피 죽으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조차 없어지겠지만. 오는 데 순서 있어도 가는 데 순서 없는 것도 사실 좀 무섭다. 세상은 무서움으로 가득차있다. 가끔 그렇게 느낀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뭔가를 남기고 싶어하는걸까? 내가 사라진대도 나를 기억할 것들을 남기고싶어서?

 아직은 요원한 얘기지만 언젠가 내게도 그런 순간이 올까? 휴 일단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 


3.

 붓다는 독버섯 공양을 받고 열반에 들었다. 깨달음을 얻은 자조차 이토록 평범하게 죽는다. 깨달음은 멀고 죽음은 가깝다. 끝은 여기에 있되 앎은 멀다.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알았으면 내가 붓다지. 얼마나 오래 생각해야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계속 생각하기로 하고. 현재의 삶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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