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랑 졸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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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설계 작업을 시작하기 전 친구들이랑 화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뭐가 좋을까? 온갖 괴상한 문장들이 다 튀어나왔지만 내 머릿속에 남은 가장 강렬한 문구는 딱 6글자뿐이었다.
「존버 성공 축하.」
들은 당시에는 너무 웃겼지만 곱씹을수록 웃을 수 없는 문장이다. 설계를 하는 게 아니라 버틴다는 감각으로 흘려보냈던 시간들이란... 모든 순간이 어두운 터널은 아니었겠지만 대체로 깜깜하고 간혹 옅은 빛이 들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쨌든 이것은 약 6년이라는 시간의 끝에 자리 잡은 '졸업설계'에 대한 약 두 달 간의 짧은 기록이다.
1.뭘 만들거야?
5학년1학기가 종강하기 살짝 전, 과사에 졸업설계 계획서를 제출했다. 사실 그 양식을 보기 전까지 뭘 할지 생각조차 한 적 없던 지라 조금 막막했다.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아람누리를 떠올렸고, 어줍잖게 지역기반의 종합 문화 예술 공간이라고 적었다. 물론 이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된다.
두번째 수업 때 지역 기반의 문화시설을 짓겠다는 생각에 맞춰 전국의 문화시설통계를 파악해 문화시설이 적은 지역을 사이트로 하겠다고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교수님의 반응이 아주 일품이었다.
"○○시에 연고 있니?"
"아뇨……. 없는데요."
"그럼 왜 ○○시로 결정한 거야?"
"통계상 문화시설이 적은 것도 있고 주변에 바다가 있어서 그걸 이용하고 싶어서요."
교수님은 건축은 결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며 사이트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바다가 있어서 좋은 거면 인천앞바다나 거기나 다 똑같지 않아? 시간 없는데 언제 다녀올 거야? 섬이라 좋은 거면 거기에 있는 섬이랑 한강에 있는 뚝섬이랑 뭐가 달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뭘 보여주고 싶은 거지? 내가 이걸 할 수 있나? 프로그램은 매우 간결하게 줄어들었고 사이트는 매우 가까운 곳으로 변경되었다. 수변공간의 미술관. 장소는 용산 노들섬으로. 다행히 나는 서울에 연고도 있고 갈 시간도 있었다. 교수님은 그 섬이 독이 든 성배 같은 땅이라고 하시더라.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성배를 집어들기로 결정했다. 달리 하고 싶은 다른 곳도 없었고.
그렇게 몇 주를 미적미적 진도를 나갔다. 살면서 처음으로 비정형에 가까운 건물을 그려냈다. 8000㎡ 정도로 설정한 면적이 20000㎡ 이상으로 늘어있었고, 건물이 땅 속으로 들어갔다. 대략적인 평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정신차려보니 7월이 다 지나있었다. 조금씩 초조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교수님은 9월 1일부터 갑자기 사라질 예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생떼같은 제자들을 두고 어디를 가시나이까 교수님이여. 초조한 마음에 불이 붙었다. 다만 마음에 붙은 불이 손에도 붙은 건 아니어서 진행상황은 여전히 느렸다.
2.이제 달려야지 뭘 어떡해?
8월 중순까지는 졸업설계 작업을 하면서도 매 주 알바는 꼬박꼬박 나갔다. 최대한 알바를 못가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고지가 눈앞에 다가오니 알바를 빼고 설계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8월 29일에 중간마감이라니! 9월 13일이 전시 시작인데 이제야 중간마감이라니 중간이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일단 마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만큼 뭐라도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할 텐데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밤을 꼬박 새서 뭔가를 만들었다. 오후 3시가 넘어서 교수님이 초빙해온 외부 크리틱이 도착했다. 어떻게 돌려 까일까 엄청 걱정했는데 다행히 따뜻한 말로 필요한 것과 바꿔야 할 것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해주셨다. 덕분에 수정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생긴 건 덤이다. 그렇게 9월이 오기 전까지 평면 수정하고, 층고가 완전히 달라진 모델링을 처음부터 다시 올렸다. 미묘하게 달라졌다만 했던 걸 또 하는 기분이란 무너진 모래성을 다시 쌓는 기분이었다. 어쩌겠어. 계속 쌓아야지.
했던 부분을 다시 쌓기만 하면 참 괜찮았을 텐데,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교수님이 연락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시기 전에 교수님에게 메일로 진행상황을 알려야 했다. 입면. 입면을 보여드려야 한다! 그때 나는 입면에 루버와 금속 판넬 중 고민을 하고 있었고, 금속 판넬을 사용한다면 타공판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이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정할 거면 하나 빨리 정해서 진행해야 하는데 잠을 못잔 탓인지 스트레스 탓인지 아니면 그냥 원래 우유부단한 건지 결정을 못 내리던 나는 급기야 일단 두 개 다 하고 봐서 하나 고르자! 라는 멍청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난 둘 중 하나는 그래도 쉽게 될 줄 알았는데 둘 다 쉽지 않더라. 일정하지 않은 곡선에 루버는 도통 착 붙을 생각을 안하고 믿었던 구멍 한 번에 뚫는 기능은 평면이 아니면 안된단다. 결국 하나하나 구멍을 뚫기 시작했는데 한 땀 한 땀 옷을 수놓는 이태리 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 짓을 세 시간 정도를 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건 아니야! 위기감 때문에 머리가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는지 나는 곧바로 타공판을 버리고 5분만에 루버를 전부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 상태로 교수님에게 마지막 메일을 보냈다. 답장은 꽤 빨랐고, 이젠 정말 끝을 내야 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모델링을 마무리 하면 당장 모형을 만들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도와줄만한 사람 세 명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보냈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흔쾌히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가뜩이나 학과에 친한 사람도 얼마 없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몇 번이고 말하겠지만 이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마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3.탈건축 희망자, 유황길만 걷는 중?
모델을 만들기로 결정했으니 레이저 커팅기로 모델 만들 재료를 잘라야 했다. 내가 잡은 예약일은 9월 3일 세 시간이었고 9월 2일 시점에서 나는 준비가 단 한 톨도 되어있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서 레이저커팅 준비를 마쳤다. 총 18장의 라이싱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뽑으면서 발생했다. 라이노에서 만들어진 스플라인이 레이저 커팅 프로그램에서 찌그러져서 출력되는 바람에 뽑으려던 양을 전부 다 뽑지 못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근 이틀을 주변 친구들에게 우는소리 하며 레이저 커팅 시간을 빌붙고 다녔는데……. 어째 번번이 도와주려던 친구들은 제대로 시간을 쓰지 못했고 끝내 나를 구해준 건 당일예약 제도였다. 이틀만에 당일 예약으로 모든 모델 재료를 출력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휴.
본 모델은 그렇다고 치는데, 이거 말고도 또 다른 문제가 높이 쌓여있었다. 메인 모델을 위한 대지 콘타가 큰 문제였다. 내 이번 설계는 땅 속에 묻혀있는데, 사실 그냥 땅 속에 있으면 지상부만 만들면 될 것을 괜히 쓸데없이 서랍처럼 넣었다 뺄 수 있는 단면모델을 만들겠다는 괴상한 희망에 들떠서 지하까지 전부 만들어야 했다. 콘타에 땅을 파서 건물을 묻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게 진행되지 않더라. 재료로 박스지를 썼는데 나는 이게 레이저 커팅기로 잘리는지 전혀 모르고 손으로 자르게 시켰고…, 손으로 자른 내 시다들은 제대로 잘리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 채 이거 이대로 괜찮은지, 이것 때문에 내가 졸업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단면모델 연출을 위해 박스지를 반으로 가르면서 층층이 쌓인 박스지가 자기들끼리 어긋나고 움직여버렸다. 어떻게 손쓰려고 해도 영 애매한 것이 참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다. 다음엔 이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무심코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점검한다. 맞다. ‘다음’은 없구나.
월요일까지 모델은 조금 미뤄두고 판넬은 먼저 손대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모델 만들기를 더 못할까, 판넬 치기를 더 못할까? 정말이지 박빙의 대결이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판넬은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순조롭게 치고 있었는데, 10일날 오신 교수님의 한마디가 내 뼈를 때렸다.
“너무 무난하고 동등하게 간다.”
“아…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냐. 취향의 문제지.”
교수님은 늘 항상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나쁘다는 건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좋다는 것도 아닌 걸로 보아 충분히 나쁘다는 말과 동의어처럼 느껴졌다. 좋지 않으려면 차라리 나쁘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무난하게 묻어가면 좋은 거지 됐어!’ 하고 말하는 무사안일주의자 나와 그래도 마지막인데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내가 의미도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끝내 이긴 건 무사안일주의자 민노랑이었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딱히 기대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에 어쩐지 기분이 미묘했지만 뭐, 이런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수 밖에 없다.
판넬이 거의 마무리되어갈 쯤 모델 제작을 위해 세 명의 시다가 동시에 나타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의 모델 나의 마감! 우리는 로비로 나가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다. 로비 바닥은 굉장히 차가웠고, 오래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아주 아팠다. 단 하루만에 한 10년은 늙은 기분이었다. 모델 만들면서 엄청 찡찡거렸는데 할 수 있다고 계속 말해줬던 긍정왕 S에게 너무너무 고맙다…. 흑흑흑. 밤까지 새가며 나와 함께해준 친구들 덕분에 해가 뜰 쯤 모델은 한 80퍼센트 정도 완성되었고, 그들에겐 그들의 삶이 있는지라 로비엔 나 혼자 남았다. 아무리 아침까지 오케이라지만 원래 마감 시간은 수요일 4시. 극도로 초조해진 나는 엉망진창 단면투시도로 판넬을 끝내버렸다. 어제에 이어 잠시 들른 J씨는 굉장히 피곤한 얼굴로 아크릴 봉을 잘라주고는 떠났다. 그리고 목요일 새벽 2시 경, 모델이 완성되었다.
덧붙이자면 서랍식으로 모델을 열고 닫으려던 계획은 좀 망했다. 좀 더 돈을 써서 와꾸도 짜고 했어야 하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다.
4.안녕 나의 아키텍쳐
13일 아침, 11시에 전시 오프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11시에 눈을 뜨고 말았다. 정말이지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느지막이 양면테이프를 사들고 전시장에 도착했다. 전시장에 걸린 내 모델과 판넬을 보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끝이구나. 이 퀄리티로, 이렇게. 뭔가 콕 집어서 아쉽다기 보다는 그냥, 이게 내 마지막이라는 게 좀 슬펐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모델 좀 크게 할 걸. 의미 없는 후회가 잔잔한 파도처럼 일었다. 그래도 이왕 끝났으니 기뻐해야겠지. 마감 전에 휘몰아치던 온갖 비관적인 생각(ex)인간관계 현타, 오늘 죽으면 내일 마감 안쳐도 되는데 등)이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안녕 나의 건축학과. 안녕 나의 터널 같던 긴 시간.
덧붙임.
전시가 거의 끝나가던 날, 친구랑 전시장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가는데 누가 나를 부르더라. 뒤돌아보니 이게 웬걸, 담당교수님이었다.
"전시 한 건 어때, 만족스러워?"
"아뇨 뭐....그냥 그래요."
"그렇겠지." (여기서 급 당황함)
거 참 뭐라고 답변을 드려야 할 지..... 교수님은 항상 그랬듯 신나게 나를 돌려까셨다....
"뭐 본인 스스로 만족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잘 끝냈어. 나중에 2학기 중으로 한번 보면 밥이나 사줄게."
교수님 제가 교수님 참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좀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