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정말 청승맞은 글(feat.유교걸 인 더 유교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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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 유교걸-
ㅇㅇ동 트러블메이커와 할머니
인터넷에 쓸데 없는 신변잡기 얘기하는 거 아니라지만 대학 졸업한다고 대놓고 졸업기까지 써둔 마당에 무슨 얘기를 더 못할까. 나는 졸업 할 때까지 학교 근처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대학을 다녔다. 사실 처음 살기 시작했던 스무살 때는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스무살 겨울을 채 보내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 뒤로 거의 4년을 매 학기마다 할머니와 둘이 보냈다. 나는 그리 살가운 손녀도 아니었고, 야작이 잦은지라 할머니와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은 아니었지만 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므로 할머니의 말년에 가장 임팩트 있던 손주는 바로 나였을거라고 확신한다. 장성한 자식들 걱정만 하시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말안듣는 손녀의 좌충우돌을 보고 계시려니 마음이 참 깝깝하면서도 동시에 삶의 활력을 얻으셨으리라고 약간의 정신승리도 곁들여본다. 다 말 잘들으면 재미 없지 않겠습니까 할머니...
정정하신 할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은 내가 어지간히도 말안듣는 손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4학년 1학기가 끝나자마자 할머니집에 들르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내가 종강한지 모르셨던 할머니는 당연히 나를 기다리셨고, 결국 나한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학기 끝났다고 말도 안하고 갈 수가 있냐며 화를 내셨다. 죄송하다고, 다음학기엔 꼭 말하고 집에 가겠다고 했는데, 다음 학기는 없었다. 그 해 8월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지셨다. 나는 할머니 없는 빈 할머니집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집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나는 가끔 보러 가긴 했지만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셨는지, 뭐라고 말씀하신건지 잘 모르겠더라. 다만 조금씩 죽음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그런 거구나, 하고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올 봄부터 여름까지 내내 그 집에서 살았지만 할머니를 뵈러 간 날은 사실 전부 떠올리고 셀 수 있을만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바쁘기도 했고, 보러 갈 자신도 없었다. 나와 함께 사는 내내 할머니는 늙음을 서러워 하셨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늙은 육신과 지친 정신을 서러워하셨다. 그 서러운 길이 향하는 끝에 있는 것을 나는 볼 자신이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졸업전시를 끝마쳤고, 계절은 겨울을 향해 빠르게 흘러가더라. 할머니 상태가 많이 나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마음의 준비를 슬슬 하고 계신 것 같았다. 할머니가 너 졸업할 때까지 데리고 살겠다고 하시더니, 약속은 지키시려나보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거의 울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그날 새벽,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급히 연락을 받고 집에서 나간 엄마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고생 많았던 인생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장례식 비긴즈
장례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의 장례식장이 꽉 차있어서 두번째로 가까운 장례식장에서 할머니를 보내드리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다니는 대학 뒤에 있는 병원이었다. 할머니가 올해까지도 건강하셔서 졸업작품을 보러 오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텐데.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을 학교를 보니 괜한 아쉬움이 들었다. 대학 수업을 마치고 출발한 동생과 함께 느즈막히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국화꽃으로 장식된 제단에 할머니의 영정이 올려져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내내 장농 서랍 속에는 언젠가 찾아올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둔 영정이 있었다. 할머니께 먼저 절을 올리고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거 이런 얘기 하다가 말하기 웃기지만 왜 남자 상복은 정장이고 여자 상복은 개량한복인지 모르겠다. 전통을 지키고싶으면 삼베옷이나 입던가. 이렇게 되도않게 애매하게 현대화할거면 좀 통일이나 하고 진행했으면 좋겠다. 남북통일 하기 전에 이런거나 통일했으면 좋겠네. 나도 정장바지를 입을 두 다리가 있는데.
장례식장 홀에는 근조화환이 꽤 많았다. 60개가 넘는다고 들었다. 동생이 화환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할머니 살아계셨으면 이거 백프로 좋아하셨을걸? 이런거에 엄청 신경쓰시잖아."
할아버지 장례식때는 어땠더라? 잘 기억나지 않았다. 뭐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계신다면 좋을 거라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장례부터 발인까지
식장엔 파란 옷을 입은 분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음식을 세팅하고 치우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명찰에는 모 대기업의 로고가 박혀있었다. 그러고 보니 식탁보에도, 일회용 식기에도 전부 그 회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동생은 그 기업의 복지(?)에 연신 감탄하며 오, 를 연발하고 있었다. 과연, 그들은 프로인듯 했다. 모 기업의 복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입관식을 안내하던 장례지도사 역시 장례지원단의 일원이었다. 그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입관식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한번씩 말하라고 말할 기회를 주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으나 전부 적지는 않겠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얼굴은 평안해보였다. 그리고 장례지도사는 수의를 입은 할머니의 시신 위로 화려한 천을 덧대어 싸매기 시작했다. 이렇게 꽁꽁 싸매는데 수의는 왜 필요한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 꽁꽁 싸매는 데만 약 한시간 반이 걸렸다. 매우 정성스럽고 화려한 치장이었다. 마지막으로 국화를 올리고, 꽃이 잔뜩 든 관 속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입관식이 끝나고 그리 지나지 않아 제사가 시작되었다. 아까 염습을 하던 그 사람은 이번엔 제사를 진행하는데, 기독교 믿는답시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친가에 익숙해진 나는(종교없음) 제사가 마냥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유교의 참맛인걸까? 무슨 절을 그렇게 많이하는지... 절 두번씩 열번 넘게 한 것 같다. 절하는 기계가 난지 내가 절하는 기곈지 모를 지경이었다. 유교랜드의 최하위서열 외손녀는 앞에 나서서 술 대접도 할 새 없이 절만 존나 했다. 이건 상관 없었는데 다만 내가 불만이었던 것은 왜 이 유교랜드에선 딸이 사위만도 못하느냔말이지. 사위자식 개자식이라는데 개자식한테는 상주 뱃지에 완장까지 다 표시해주고 생전 고인이 제일 사랑하던 막내딸은 왜 아무것도 안주느냐고. 어? 할아버지는 사위놈이 불알만 덜렁거리면서 왔을때 일주일동안 술만마셨다고. 씨발! 지금도 이걸 생각하면 술마시고계실거라고!
나의 불만과 별개로 시간은 꽤 빠르게 흘러갔고, 아침 일찍 할머니를 납골당으로 모실 때가 다가왔다. 역시나 가기 전에 제사부터 지내더라. 절을 정말 많이했다. 사실 할머니는 그리 절받기를 좋아하시진 않았는데... 제삿상 위 음식들을 조금 먹고 발인을 위해 서울승화원으로 출발했다. 5년전에 오고 처음으로 다시 왔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어딘가에선 누군가 죽고있겠구나. 쓸 데 없는 감상에 젖었다. 할머니의 시신이 소각로로 들어가고, 약간의 기다림을 지나 당신의 뼈만이 한 폭의 보자기 위에 남았다. 곱게 갈린 뼈는 유골함 속으로 스르륵 떨어졌다. 외삼촌이 유골함을 받아들고, 직원은 사무적인 손길로 다음 사람의 뼈를 꺼내었다.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먹고 자고 사는 모든 것이 돈이지만 죽는 것조차도 돈이구나. 한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로구나.
할머니의 유골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경기도 모 처의 집안 납골묘였다. 납골묘로 올라가는 야트막한 언덕 입구에는....이 산에 무덤이나 봉안시설을 짓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이거 괜찮은건가? 다행히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았지만 경고문 앞에 떡하니 세워진 납골묘는... 이것 참 뭐라 해야 좋을지.
눈뜨고 코베인-납골묘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제사를 지냈다. 장례지원단에서 야외 제사까지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더라. 제기, 음식, 돗자리까지... 동생은 또다시 감탄한듯이 연신 "할아버지 장례식때 제사는..제사가 아냐... 가짜였던거지.."를 반복했다. 과연 정성스럽긴 하더라.
얘기를 들어보니 그 장례지도사는 장례지도학과를 졸업한 전공자인듯했다. 과연, 그는 제삿상 봉분밥에 꽂은 숟가락을 예술적으로 빼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제사가 끝난 후 야외 제사음식은 안으로 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전통에 따라 간단히 음복을 하고 납골묘를 떠났다. 할머니의 유골함은 납골묘에 안치되었다. 좋은 곳으로 가시길.
어쨌거나 다시 할머니
외숙모의 이모- 뭐 그러니까 나랑은 아무 연관 없는 분인데,- 아무튼 그 분에게는 꿈에서 뭔가를 보는 기운이 있는 모양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도 그런 꿈을 꾸셨더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러 오는 꿈.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알리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걸어 "느이 시어머니 돌아가셨냐?"고 물어보셨단다. 그분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시 만나서 좋은 곳으로 가셨고 자식들 다 잘되도록 지켜볼거라고 말하고 가셨다고 하는데, 사후세계도 영적인 무언가도 딱히 믿지는 않지만 그 꿈으로 가족들이 기뻐한다면 그것은 정말 잘 된 일이다.
내가 객관적으로 할머니한테 좋은 손녀였나?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난 아침에 잘 못일어나고, 밥도 많이 안먹었고1, 집에도 엄청 늦게 들어왔으니까. 그럼에도 당신은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셨다. 집에 있으면 하는 것도 없이 돌침대에서 굴러다니기나 하는 게으른 손녀딸이 있는 시간을. 솔직히 장례 첫날도, 입관식에서도, 발인날도 울지 않았지만 이걸 쓰는 지금은 어쩐지 눈물이 쬐끔 난다. 그래, 이건 정말정말 청승맞은 글이다.
- 단순히 아침에 밥을 못먹는 편이었던 것 뿐인데 할머니가 맨날 너는 왜 밥을 이렇게 많이 안먹니~~~~~라고 자꾸 뭐라그러심...우엉...아침부터 밥 많이 못먹는데용...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