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년 연속 록 페스티벌을 가지만 여전히 짐 챙기는 일은 어렵고도 어색하다. 설상가상으로 자율 캠핑권(내 텐트를 칠 수 있음)을 산다는 게 설명을 잘 안 읽고 일반 캠핑권(돈 주고 미리 쳐진 텐트를 빌려야 함)을 사버린 걸 가기 전날에 깨닫는 바람에 그거 바꾼답시고 오전 내내 골머리를 앓았다. 어쨌든 표 문제는 한나절 만에 해결되었다만 더 큰 산이 남아있었다. 날씨! 록 페스티벌이란 현대판 기우제라도 되는지 비가 오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만 이렇게 첫날부터 비가 쏟아지는 일은 처음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특급 도구를 하나 챙겼다.
첫 번째 고생-대부도 가는 길
올해 내가 선택한 페스티벌은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통칭 안산이다. 스무 살 때 이후 2년 동안 뭐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생각하며 아침 일찍 캐리어와 텐트를 끌고 집을 나섰다. 오이도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다 괜찮았는데, 거기서 대부도까지 가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40분에 한 대 꼴이다. 꽤 일찍부터 기다렸다고 생각했건만 무거운 짐을 들고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먼저 우르르 몰려가 버려서 결국 차를 놓쳐버렸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다음 차를 탔지만 이런, 이번에는 멍청하게도 내릴 정류장을 지나쳐버렸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흙길을 30분 넘게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걸은 후에야 매표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둘러 종이 표를 팔찌로 바꾼 후 입장했다. 매표소부터 공연장까지 가는 길은 또 어찌나 먼지! 그래도 일단 도착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다행히도 비는 거의 오지 않았고 기쁜 마음으로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텐트 치고 바로 본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김간지 멜로디언 개잘침
두 번째 고생-진흙 뻘 밭
공연장 부지에 이전보다 좀 더 인조잔디를 많이 깔아서 정리하려 애쓴 흔적은 보였지만 슬프게도 계속 내린 비로 인해 진흙 밭은 점점 더 넓어져만 갔다. 다행히 장화를 신고 갔지만 장화를 신어도 푹푹 빠지는 느낌은 최악. 첫날에는 그냥저냥 돌아다닐 만했지만 며칠을 연이어 내린 비로 인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공연장 부지 전체를 10이라고 하고 첫날의 진흙 밭을 2라고 한다면 마지막 날은 10중 8이 진흙 밭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록 페스티벌에 왔는지 머드축제에 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냥 발만 푹푹 빠지는 수준이었으면 좋았을 걸, ‘대부 바다향기 테마파크’라는 부지 이름을 온몸으로 체험시켜주고 싶었는지 뻘에서는 역한 냄새가 났다. 바다의 감촉과 냄새를 동시에 체험시켜주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오감만족인지. 감동해서 울 뻔했다.
3일간의 갯벌체험을 절대 잊지 말라는 의미인지 몸에 흔적까지 남겨주는 세심함은 정말이지 굉장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뻘 밭의 더러운 환경 때문에 돌아와서도 접촉성 피부염으로 며칠 고생했다. 모기 물린 거랑 이거랑 겹쳐서 간지러워 죽는 줄 알았다.
뻘밭 ㅅㅂ...
세 번째 고생-비
다행히도 첫날은 오전에 비가 잠깐 온 후로 한동안 흐리기만 해서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헤드 라이너 공연은 감동 그 자체였고 이어진 새벽 타임 공연들도 굉장했다. 그쯤부터 조금씩 비가 내리긴 했지만. 문제는 새벽부터 내린 비가 아침까지 비가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텐트 한구석이 촉촉하게 젖어있었고 그날 나는 머리카락이 축축해서 깼다. 다행히 끝 부분 말고는 물이 새지 않아서 그냥 수건으로 닦고 말았지만……진짜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그날 오전은 계속 비가 왔다. 공연장 부지의 습지화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발목까지 오는 내 장화는 물로 가득 차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찰랑찰랑 물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진흙과 발의 양자 대면은 상상하기도 싫다. 다행히 해가 질쯤 비가 그쳤다. 잠시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고 발을 말리고 있었는데 문득 가져온 특급 도구-호미- 생각이 났다. 그래! 호미로 텐트 주변에 도랑을 파면 텐트에 비가 새지 않을 거야.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습지 위에 인조잔디를 깔아놓은 캠핑 부지엔 호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잔디가 걸려서 흙까지 호미가 들어가지를 않았다. 힘으로 뜯으면 죄 뜯겨 나갈 것 같아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결국 들고 온 호미가 아까워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새벽 3시가 넘어 공연도 다 봤으니 이젠 슬슬 잘까 싶을 즘, 어김없이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쯤 잤나 싶었던 이른 새벽, 이날은 웃옷이 축축해서 깼다. 처음에는 다시 자려 했지만 느낌이 이상해서 매트를 들춰보니 텐트 안이 물바다였다! 분명 이럴까 봐 김장 비닐도 깔고 텐트 안에 돗자리도 깔고 그 위에 매트를 얹었는데 매트까지 물이 스며있었다. 일단 한숨을 쉰 후 공기 베게 위에 쪼그려 앉았다. 앉아서 자야 하나. 결국 해답은 우비였다. 텐트 안에서 우비 입고 잤다. 그때 옆에서 자다 깬 친구랑 “이런 데서 어떻게 자냐 진짜.” “락페에 머드축제에 워터파크까지 여기 다 있네.” 같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은데 너무 피곤해서 우비 입은 지 10분 만에 다시 잤다.
자고 일어나자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고 놀랍게도 우리는 더워서 깼다. 더워서! 어제 그렇게나 비가 왔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햇살이 뜨거웠다. 깨자마자 씻고 텐트를 정리했다. 비만 아니면 마지막 날도 텐트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집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텐트에서 하루 더 자고 싶지 않아 새벽 버스를 타고 집에 가기로 했다. 그 결정은 신의 한수였다. 마지막 날 공연이 끝난 새벽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지겹지도 않은지.
네 번째 고생-모기
날씨가 갑자기 화창해지자 불현듯 떠오른 불청객이 있었다. 대부도 모기떼. 습지 모기는 일반 모기보다 강한지 청바지도 뚫고 모기 퇴치 스프레이, 모기퇴치 팔찌 따위는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는 피를 쪽쪽 빨고 다니더라. 오전에는 몰랐는데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니 아주 기승을 부리는데, 모기들이 피를 하도 많이 먹어서 날아다니는 속도가 느릴 지경이었다. 제일 압권은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새벽이었다. 주변에 모기가 하도 많이 날아다녀서 다리를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그 움직임이 무색하도록 많이 물렸지만. 습지 모기를 완전히 피해 서울로 와서 온전한 다리 상태를 봤는데 거의 젖소 급으로 얼룩덜룩했다.
다행히 맑았던 마지막 날. 맑아도 고생일줄은...
이렇게 고생담만 줄줄이 써놓은 걸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겠지. “왜 사서 고생이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헛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좋아서 간 건데 불구하고 생각보다 과하게 고생을 한 건 분명하다. 그래도 비가 오기 전 아직 덜 젖은 무대 앞 잔디밭에서 몸부림에 가까운 파워댄스를 추거나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처음 본 밴드의 공연에 열광하거나 첫째 날 헤드 라이너 공연에서 팬들이 준비한 이벤트에 맞춰 모두 함께 불빛을 흔들던 순간은 페스티벌이 충분히 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해주더라. 모든 공연이 끝난 새벽 4시경부터 아침 9시까지,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깨있는 모든 시간을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한낮, 한밤중, 저녁 그 언제든 음악을 배경음악 삼아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가장 완벽한 피크닉이요 여름 휴가다. 평소 같으면 언제 이렇게 아무 데나 누워서 자고 일어나면 어슬렁어슬렁 앞으로 가서 공연을 보는 흥청망청 한 짓을 할 수 있을까?
같이 갔던 친구가 평하길, 여러 의미로 잊지 못할 일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또 갈 거냐고 묻는다면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아마 갈 것 같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낫겠지?’ 같은 멍청한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노엘은 존나 멋지다 개짱짱
#고생을 피하는 꿀팁!!!
하나-페스티벌에 비는 거의 ‘절친’이라 할 수 있으니 우비는 필수인데요, 우비가 생각보다 잘 찢어집니다. 특히 겨드랑이 부분이. 애초에 튼튼한 우비를 챙겨가거나 저렴한 우비 2개를 챙기면 보다 편안합니다.
둘-장화는 무조건 무릎까지는 오는 장화로 준비합시다. 그래야 비 올 때 우비로 장화 상단이 가려집니다. 물론 안산이 아니면 장화가 굳이 필요 없습니다.
셋-숙소나 캠핑 관련 예약 시 홈페이지를 잘 읽읍시다.
넷-락 스피릿이 넘쳐흘러 주체할 수 없다면 모를까 웬만하면 집에서 에어컨 틀고 CD나 공연 실황 DVD를 감상하는 쪽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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