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방탕한 내일로 여행기(7/7-7/11)1편-부산 가기 전 편-
"여행 가고 싶다!"라는 친구 H의 말에 "그럼 나랑 가자!"라고 말한지 어언 2주....계획을 세우자 세우자 말만 하고 정작 아무 이야기도 안해서 여행 안가고 흐지부지되는 줄 알았는데 드디어 약속을 잡았다. 월요일(7/6)날 만나 어디 갈 지 계획을 세우고 화요일부터 시작되는 5일권을 끊었다. 일찍 자야 하는데 밤에 잠이 잘 안왔다. 물론 딱히 설레서 그랬다기보단....평소에 늦게 자던 습관때문이었지만. 두시 반쯤에야 잠이 들었다. 5시 알람을 맞춰놓았는데 알람보다 엄마가 더 빠르더라. 5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데 정말이지 엄마는 걱정이 참 많은 분이다.
*7/7
첫차를 타고 도착한 아침의 청량리 역은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이었다. 아침으로 먹을만 한 삼각김밥과 초코우유를 샀다. 몇 분 후 경의선 개찰구 쪽으로 H가 나타났다. 우리는 이런저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나누며 승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빈 청량리역 4번 승강장 뒤편 스크린도어 유리 너머에 평소에 타고내리던 경의중앙선 선로가 보인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편의점은 닫혀있었다. 몇분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착했다. 우리는 식당칸 왼쪽에 드문드문 놓인 둥근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거나 아까 산 삼김을 꺼내거나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차장(이 맞을것이다. 아마도.)님이 오늘은 자리가 많으니 좌석에 앉아가라고 말을 해주셔서 우리는 좀 더 편하게 자면서 정동진까지 갈 수 있었다. 오만 역에 다 정차하는 기차는 장장 4시간 반이나 걸려서 정동진에 도착했다. 하늘은 좀 흐렸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역 울타리 너머로 바다가 보였으니까.
짐도 둘 겸 일단 잘 곳을 먼저 정해야겠다 싶었던 우리는 역 바로 앞 골목으로 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라고 쓰인 포스터가 반가웠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은 우리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대신 우리를 구해준 곳은 그 앞의 모텔이었다. 약간 과잉친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친절한 할아버지는 3만원에 우리를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세상 참 좋지. 모텔 방에 와이파이도 되고 컴퓨터도 있더라.
정동진
바다에 들어가기엔 날씨가 영 꿀꿀해서 그냥 해변을 쭉 걷기로 했다. 모래사장은 자기가 모래라는걸 증명하듯이 발을 푹푹 끌어들였다. 신발을 벗고 걸을까 했지만 그러기엔 모래 속에 조개가 너무 많았다. 밟으면 아프겠지? 그때 H가 뭔가 발견한 듯 말했다. "저거 타고싶다!" 레일바이크였다. 몇년 전 유행한 후 전국에 우후죽순 생긴지라 몇 번 타본 적이 있지만 역시 놀러오면 한번쯤 타고싶은게 사람 마음인가보다. 일단 타러 갔는데 가격이 2만원. 아주 못 낼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H는 아까운가보다. 그냥 해변을 좀 더 걷기로 했다. 기차역 오른쪽으로 1km 조금 넘게 걷다 보면 모래시계 조형물과 기차로 만들어진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고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레일바이크나 탈 걸 그랬다. 사실 해변을 좀 더 걸어다니고 싶었는데 H는 이제 슬슬 들어가고 싶었나보다. 자꾸 저기는 너무 멀지 않아?하고 묻는다. 마침 비도 조금씩 오고, 그냥 커피 한 잔씩 사서 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별로 하는 것도 없이 침대에 누운 채로 잉여롭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밤이 되어 있었다. 시켜먹은 치킨은 꽤 맛있었다. 그 집이 치킨을 잘하는지 그냥 내가 배가 고팠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7/8
사실 정동진을 간 이유는 '해 뜨는 게 보고싶다'는 H의 기원때문이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날은 비가 왔고 당연히 해돋이는 볼 수 없었다. 물론 날씨가 좋았어도 볼 수 없었을것이다. 늦잠잤다. 평소 습관들이 어디 갈리가 있나.
늦은 아침을 먹고 1시 조금 넘어 기차를 탔다. 정동진에서 출발해 안동역으로 가는 영동선 열차다. 우리는 중간에 안동에서 내릴 예정이다. 자리는 거의 텅텅 비다시피했고 나와 H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맨 뒷자리에 앉아 시트를 뒤로 기울였다. H는 잠든 것 같았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그저 창 밖을 보며 경치구경을 하거나 위키에 철도 정보를 하나하나 입력해보며 즐거워할 뿐이었다. 그 깨알같은 정보란. 새삼 철덕들의 위력을 느꼈다.
기차가 긴 터널에 들어서고, 매캐한 기름내가 기차 안을 뒤덮을 즈음 나는 보고 있던 위키를 껐다. 머리가 아파서 뭘 읽고있기가 힘들었다. 창 밖은 온통 시커먼데 드문드문 형광등 불빛이 보였다. 휴대폰에 뭔가 적었지만 부끄러우니 옮겨적지는 않겠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온통 설국이었다- 라는 말로 시작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을 기억한다. 비슷하게 터널을 빠져나오니 온통 푸른색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간이역과 끝없이 펼쳐진 산, 산, 산. 그리고 군데군데 점처럼 박힌 작고 허름한 집 뿐. 다른 것은 없었다. 산 속에 우연히 불시착한 양 이질적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다음에 다시 기차여행을 한다면 산 속 간이역에 내려볼까 싶다. 몇 개의 명판 뿐인 임시승강장과 간이역을 더 지나쳐서야 비로소 조금은 시골 소도시의 모습을 갖춘 역이 나타났다. 물론 안동까지는 아직도 한참이었다.
안동역
안동역은 그야말로 지방 중소도시 관광지 역 스러웠다. 우리와 같이 내일로 여행을 하는 듯 보이는 젊은 청년들이 역 안에 붙은 지도를 분주히 살피거나 비치된 스탬프를 찍고있었다. 나도 뭔가 남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종이가 한장도 없었다. 일단 숙소에 짐을 두고 이동하기로 하고 택시를 잡았다.(역에 물품 보관소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다음날 오후가 지나고였다.) 처음 도착했을때 여기가 맞나 싶었다. 게스트 하우스 앞에 사적지 표지판같은게 세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할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이름은 분명히 맞는데.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그 집이 맞았다. 그 집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요즘 한옥이 다 그렇듯이 겉은 한옥이었지만 속은 현대식이었다. 우리는 간단히 짐만 내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크게 착각을 했던 것이 걸어서 안동역쪽으로 금방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돌아가는줄을 모르고.....1시간은 꼬박 걸은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찜닭으로 유명한 안동 구시장에 도착했다. 찜닭은 비싼만큼 양이 많았고, 당면이 맛있었다. 감자는 좀 덜 익었더라. 밥을 먹고 잠깐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렀다. 빵 맛에대해 말하자면 평범하게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빵집 탐방 자체를 좋아하는지라 만족스러웠다.
귀래정
숙소로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야경이 멋지다는 월영교(엄마가 매우 추천하셨다.)나 들를까 했지만 지방 버스는 7시에 끊길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만 알고 그냥 택시타고 숙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를 맞아준 것은 집 주인아저씨였다. 친절한 아저씨는 우리가 아까 보지 못했던 정자 마루 문을 열어주셨다. 작은 방 세개 쯤을 합쳐놓은 그 큰 마루에 나와 H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우리에게 공간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사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쓰고있지만 본래 이곳은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함께 풍류를 즐기던 정자라고 했다. 과연, 이런 공간이라면 풍류를 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설명을 마친 아저씨가 떠나고 우리는 따뜻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뒹굴거리며 트위터를 하다가 잠이들었다. 아침엔 비가 조금 왔고 우리는 매우 느릿느릿하게 짐을 챙겨 숙소를 빠져나왔다.
*7/9
하회마을
하회마을까지 택시를 타고 간 것은 우리가 했던 선택 중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택시를 1시간을 넘게 탄 것 같다. 요금?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왔다. 살면서 택시비로 3만원 넘게 써본건 이번이 처음이다. 설상가상으로 길이 좋은 편도 아니라 속이 정말 안좋았다. 아마 H는 몰랐겠지만 조금 토했다. 하회마을 관계자 여러분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
2학년 2학기에 전필로 배우는 '전통건축' 과목은 여러가지 주제로 학생들에게 세미나를 하게 시켰는데, 내 발표 준비가 빡치는 거랑 별개로 일단 남의 발표 듣는 재미는 있었다. 그 발표때문에 안동에 온 건 아니지만 하회마을까지 오니 도산서원이니 병산서원이니 하는 서원건축과 하회마을의 양진당과 충효당으로 대표되는 양반가옥건축에 대한 발표가 문득 생각이 나더라. 탈건축학과를 외치고 다닌 주제에 미련이 참 많다. 아이고.....
하회마을을 주의깊게 다루던 과목이 전통건축 말고 하나가 더 있었다. '사회'였다. s자로 강이 휘몰아 나가는 마을의 모양을 뭐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이과였던지라 사회를 1학년때 이후로 안배워서 안타깝게도 기억이 안난다. 마을 외곽에서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그 풍경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그야말로 사진기가 있다면 찍지 않을 수 없을만큼 매력적인 풍광이었다.
마을 중심에 굉장히 큰 나무가 있었다. 몇백 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킨 나무에는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쪽지가 온통 걸려있었다. 나도 소원을 적어 걸었다. 뭘 적었을 것 같은가? 성적 좀 잘 나오게 해달라고 적었다.ㅠㅠㅠㅠㅠ 소원을 적고 마을을 빠져나오니 마침 타이밍 좋게 하루에 한번만 한다는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을 하고있었다. 내용은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였다. 초랭이도 있고 양반도 있고 파계한 중도 있고. 무엇보다 태평소 연주자의 쏘울 가득한 연주가 굉장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백정이 소잡는 장면이었다. 소 불알모양 인형이 깨알같았다.
버스와 기차 시간이 애매해서 병산서원은 갈 수 없었다. 지방 소도시 여행은 역시 자가용이 최고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내년에는 면허를 따서 아빠차로 여행을 가야지.(희망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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