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20190829


1.

스무살 때였다. 그때 나는 친구 자취방을 뒹굴고 있었다. 내 옆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함께 뒹굴며 친구는 말했다. 나 아직 대학에 다닐 준비가 안된 것 같아. 그렇게 말한 후 정확히 한학기 후, 친구는 정말로 사라졌다.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 애는 그렇게 추상적인 한 문장으로 남았다. 6년이 지났고 나는 물결에 밀려밀려 그럭저럭 회사에 취업했다. 그리고 문득 그 애 생각이 났다. 이제는 준비가 끝나서 무언가 하고있을까?

 그런데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된 모양이다. 회사도, 어른도.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부평초마냥 부유하고 있다. 우리의 전공은 땅 밑에 발을 내린 '진짜'인데. 나는 진짜가 되지 못한 채 수면 위를 떠돈다. 방향도 없이, 이정표도 없이.


2.

회사는 벌써 두달째다. 이번 주면 정말 딱 두달 다닌 셈이 된다. 두달동안 뭘 했냐고 물으면 그건 애매하다. 선배들이 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를 묻거나 그날 본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곤 한다. 안온하고 별다를 것 없는 하루하루. 딱히 지금으로선 내가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지라 별 일 없이 돈 받는다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월급날에 어느 과장님이 한 말이 가슴에 꽂힌다.

"월급 많이 받았어?"

"아뇨 뭐...그냥저냥이죠."

"한 만큼 나왔지?"

한 일도 돈도 없는 나의 갈빗대 사이로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팀장님이 다음달이면 신입이 들어오는데 신입 앞에서 뭐라도 아는게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분은 좋게, 정말 좋게 말해 허심탄회하다고 표현했지만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겠지 아는 게 없어도 아는 척이라도 하겠다, 공부라도 하겠다. 그렇게 대답하는게 보편적인 신입의 상일텐데. 에휴 직장생활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말 모르겠다. 직장은 정말 작은 세상이고, 소문은 KTX보다도 빠르다. 게다가 이 아저씨 투성이 사무실의 젊은 여자 신입사원의 일거수일투족은 누구보다도 눈에 띄기 쉽다. 그러니까 넌 조심해야해. 설령 네가 할 일이 없다 해도 뭔가 하려는 어필이라도 해야해. 작업후 작업 뒷정리라도 해. 뒷말을 무서워하라는 말은 아니야. 긴 기간이건 짧은 기간이 되었건 네가 얻어가는 게 있길 바라는 거야. 아무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지 않아. 네가 직접 움직여야 해. 아무것도 없이 시간을 버리지 마. 너무 아까운 시간이야. 회사에 문제가 많고 회사를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 그치면 안돼. 반면교사를 삼고 네가 앞으로 가야지. 문제에 의문을 품고 화를 내야 하는거야. 그러면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네가 여기 계속 있을지, 어디로 가고싶은지,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묻지도 않을테지만 적어도 여기에 있을 때는 넌 뭐라도 얻어갔으면 해. 네가 예쁨받았으면 좋겠어. 여기에 젖어버리지 마.

 솔직히 말하면 다 좆같다. 회사는 매 순간이 서로에 의한 평가의 연속이다. 저 사람은 일을 잘하지만 성격이 나빠. 저 사람은 어떻고 저떻고. 말은 공기를 지나는 빛마냥 빠르게 퍼진다.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가 서로를 알고 서로를 모른다. 지금은 다들 내게 일은 어떤지 회사는 다닐만한지 묻지만 곧 그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일은 잘하는지를 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모르는 틈에. 나는 욕먹는 것도 싫지만 예쁨받는것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씨발. 이 회사-혹은 사회와 나의 알량한 자아의 깊은 불화의 틈에서 솟아오른 불안감이 괜히 나를 배배꼬이게 만든다. 아무래도 나는 아직 회사에 다닐 준비가 안된 모양이다.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금방이라도 나갈 거라고 생각하는걸까? 내가 그렇게 의욕이 없어보이나? 생각해본 적 있던 말들을 길고 긴 타인의 입으로 들으면서 나는 내가 뭘 하고싶은지 살짝 잊어버릴 것만 같다. 어쩌면 지금 내가 받는 돈은 이런 고민에 대한 대가임이 틀림없다. 임금의 대가가 이런 쓸데없는 고민이라면 차라리 일을 많이 하는 게 낫겠다.


3.

 매 해 진짜 어른이 되고싶어서 몸부림치는데 여전히 모르겠다. 나이값이 너무 무겁다. 쓸 데 없이 숫자만 커지고 있다. 요즘 읽은 책에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있을 장소를 인정받는 것이고, 그 장소는 타인의 환대로 만들어진다고 적혀있었다. 나는 '사람'이 된건지, 안된건지.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인지, 아닌지. 부평초는 오늘도 고민 속에 물 위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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