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도쿄 여행기上
20170210-0217
도쿄를 가야겠어.
약 3년 전 나는 적금을 들었다. 달에 3만원짜리 적금. 생각해보니 엄청난 쥐꼬리다. 그래서 달마다 빠져나가는 3만원 외에도 조금씩 돈을 모았고, 만기시 약 130만원이 생긴다는 계산이 섰다. 그리고 만기가 한참 남았던 어느날, 나는 물건너에서 최애커플 쁘띠온리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다. 날짜도 완벽했다. 2월! 시간도 있고 돈도 있다. 가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하루 빼고 전혀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여행 준비. 말이 쉽지 하는 것은 쉽지 않더라. 초장부터 비행기 표 사는게 꼬여서 멍청비용 10만원을 소모해버린 나는 굉장히 큰 빡침과 자괴감을 느꼈고, 이후 집에 있던 모 밴드의 CD를 비싸게 팔아 돈을 마련할때까지 억울함에 만나는 사람마다 피치항공 욕을 하고 다녔다. 하여간 해결이 되긴 되었으니 숙소도 전부 잡았고, 떠날 일만 남았다!
2.10
너는 비행기도 지각해?
9시 비행기니까 한 2시간정도 일찍 가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꾸물대며 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8시쯤부터 이 생각을 후회하게 된다. 보딩패스를 무인발권카운터에서 뽑았으니 수하물을 금방 맡길 수 있을 줄 알았지, 웬걸. 줄이 족히 100미터는 되어보이더라. 9시 출발 비행기니 8시 15분까지 위탁수하물을 맡겨야 한다는데, 시간은 흐르는데 줄은 도통 줄지 않아서 내 똥줄이 타들어가더라....아악..... 가까스로 수하물 맡기고 나니 시간은 8시 20분. 마음이 너무 급하다. 이제 출국수속을 하러 가는데, 아이고야. 여기도 줄이 산더미다. 8시 40분이 지나자 정말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이젠 비행기도 지각하는건가... 성실하게 살겠습니다...흑흑....
가까스로 8시 59분쯤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지각은 면했다. 내가 왜 금요일 아침 출국 땅콩항공 발권을 무시했을까...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다시는 아침비행기의 인파를 무시하지 않겠습니다ㅠㅠㅠㅠ
도쿄 일인생활자와의 조우
사실 출발 전날에 도쿄에 살고있는 사촌오빠한테 연락을 했다. 내일 일본간다고. 그는 선뜻 오면 점심사준다고 말하며 공항으로 데리러 와준다고까지 해줬다. 공항 어디냐고 해서 하네다라고 했는데 미안...나리타였습니다. 아무튼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자 그가 있었다. 그와 함께 도쿄 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도쿄에서 살만한지 뭐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도쿄는 톨비가 비싸고 주차비가 비싸며 집세가 비싸다. 그와 함께 숙소가 있는 이케부쿠로에서 간단하게 회전초밥을 먹었다. 초밥은 별 감흥 없이 굉장히 초밥맛이었다. 사실 땅콩항공은 이 짧은 노선에도 밥을 주기 때문에 약간 배가 부른 상태여서, 그리 많이는 못먹었다. 점심을 다 먹고 그는 나를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고는 일주일간 지방에 일이 있어서 바로 떠났다. 일 열심히 하시고 부디 건강하게 잘먹고 잘사시길 바란다. 다음에 가면 야끼니꾸 사준댔으니까 꼭 다시 가겠습니다...
이케부쿠로의 방황하는 어린양
숙소에 빠르게 짐을 내려놓고 받은 프리파라 준비물을 가방에 챙겨넣어 밖으로 나왔다. 역앞 타이토스테이션에 프리파라 기기가 3대 있었다. 첫판은 친구 계정, 그리고 두번째 판은 내 계정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마이캐릭터 만들기를 찾지를 못해서 실패, 세번째 판에서야 마이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 일본 프리파라 정말 재미있다. 노래도 많고, 옷도 더 많고. 포즈도 다양하고 티켓 테두리도 화려하다. 게임 플레이 난이도도 조금 더 높고.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1700엔 가량을 갖다 박고 게임센터에서 나왔다. 본격 오타쿠 여행을 시작해볼까. 역시 아니메이트부터 가는게 좋겠다 싶어 이케부쿠로 아니메이트로 향했다. 사람 정말 많고, 아이나나 굿즈 굉장히 많았다. 너희 흥장르가 맞긴 맞구나... 가볍게 아이나나 웨하스 한개와 마침 오늘 발매일이던 코미컬라이즈가 실린 잡지를 사서 나왔다. 다시 길가다 들어간 게센에는 파스텔 우사파카누이가 있었다. 리쿠. 리쿠를 뽑아야겠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다. 저걸 뽑지 못하면 안될 것 같았다. 500엔정도 썼다 싶을 때 쯤 직원이 와서 리쿠를 뽑고 싶은 거냐고 물으며 위치를 바꿔주었다. 뭔가 팁같은게 있냐고 묻자 머리를 노리라는데... 말이 쉽지 계속 헛손질만 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인형뽑기 유경험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인형뽑을건데 너 전에 유리 씨1 뽑을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
"너 크레인게임 하려는거야? 하지 마. 안돼 넌."
"아 쫌."
그녀는 잡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밀어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말을 들었다고 크게 달라질건 없었다. 그렇게 천엔정도를 더 꼴아박고 나자 직원이 와서 못뽑으면 우주가 멸망할 정도로 쉬운 자세로 인형을 걸쳐주었다. 몇 번의 시도 후, 내 손에는 리쿠 인형이 들려있었다. 한 2300엔정도 쓴 것 같다. 다행히 나와서 가본 라신반에는 리쿠 인형이 없었다.... 아냐 있었어도 이건 내가 뽑았다는데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슬플거야.
2.11
스트릿 오브 더 영
아침에 천천히 일어나서 씻고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조식 시간은 4시부터 11시까지. 11시 다 되어가는 시간에 먹는 이게 과연 조식인가 점심인가 의문이 들지만 내가 조식이라면 조식이다. 조식은 평범하게 토스트, 차, 그리고 정체불명의 멀건 국이다. 매일 바뀐다고 적혀있었고, 이날은 웬 카레가루같은게 든 멀국이었다. 토스트에 버터 발라먹는걸 워낙 좋아하는지라 만족했다. 사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버터가 그리 좋은 버터는 아니었다. 영국에서 먹은 조식뷔페 버터가 정말 맛있었는데. 좋은 버터 아시면 항상 추천 받습니다.
밥 다 먹고 오늘의 프리파라를 마치고 지하철을 탔다. 동생의 이름이 새겨진 파스모에는 30엔이 남아있었다. 어디 쓸래도 쓸 수 없을 돈이다. 3000엔을 충전하고 하라주쿠로 갔다. 내리자마자 타케시타 거리라는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가 보였다. 휩쓸리듯이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온갖 귀여움을 두른 옷들이 진열장에 내걸려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많이 본 간판...에뛰드가 있었다. 일본에서 마주칠 줄이야. 거리에 크레페 파는 가게가 정말 많았는데 그냥 전부 지나쳐버렸다. 하나쯤 먹어볼걸. 그렇게 타케시타 거리와 하라주쿠 거리를 쭉 걸어 도착한 곳은 파라주쿠...프리즘스톤 숍이다. 프리파라나 그 전작들을 하나라도 팠으면 정말 좋아했겠지만 슬프게도 아케이드 게임만 가볍게 하는지라 가볍게 카미쥬얼가챠만 하고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카미쥬얼은 당첨되지 않았다.
프리즘스톤 숍을 나와서 길을 따라 걷자 오모테산도 거리가 나왔다. 굉장히 큰 대로를 중심으로 길가에 세련되고 독특한 현대건축물이 늘어서 있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보고싶었던 건물들을 봤을 때의 감동이란... (나중에 찾아보니 길 전체가 온통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다음에 다시 가면 확인 좀 하고 가야지.) 걷기만 해도 즐거운 거리였다. 다만 뭘 좀 먹고싶어졌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는건 큰 문제다. 보이던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서 적당히 빵을 씹었다. 맛은 없었다.
오모테산도 거리를 쭉 따라 내려가면 하라주쿠 역이 나오는데, 그 근처에 메이지 진구가 있다. 마침 내가 그 근처에 도착하자 진구 입장 마감시간이 가까운지 사람들이 분주히 들어가고 있더라. 기왕 왔는데 한번 가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사람들을 따라 발을 들였다. 굉장히 넓었고, 도심의 바로 앞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나무로 둘러싸인 숲이었다.
2.12
오타쿠는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처음으로 가는 일본 오타쿠 행사인데다가 부탁받은 책도 있다. 무조건 일찍 가야지. 일찍? 얼마나 일찍? 역시 첫차 뿐이지. 그렇게 쉽게 결정은 했는데.... 나는 꼭두새벽에 일어나기에 자신이 없다. 못하는 건 아닌데, 대개 그것은 엄청난 긴장과 강박을 수반한다. 그래, 다시 말해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잠을 못잔다. 이날도 4시반에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잠들어서 4시 반까지 1시간에 한번씩 깨서 시간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비장하게 전날 챙겨놓은 가방을 메고 숙소를 나섰다. 아직 새벽이라 그런지 술쳐먹은 취객들이 거리에 좀 있었다. 편의점에서 115엔짜리 페스츄리를 하나 사서 비장하게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이케부 역 너무 복잡하다. 쉬벌...
어쨌거나 도착했다. 빅사이트. 서1/2관과 서3/4관의 줄이 나뉘어있었는데, 내가 서3,4관쪽 줄의 한 7번째 정도로 온 사람이더라... 정말 일찍 갔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이었다. 행사 입장 시작은 11시... 내가 도착한 시간은 6시.. 그때부터 장장 5시간의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정말 오타쿠 뭘까. 뭔데 이렇게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 새벽에 일어나서 그 추운 밖에서 5시간을 기다렸지. 일본 행사는 듣던대로 줄을 정말 끝내주게 잘 세운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고, 전시관 옆 큰 공터에 사람들이 4열로 선다. 그리고 갑자기 진행요원들이 앉으시라고 말한다. 4시간 가량 남았을 쯤이었다. 앉으라는 말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낚시의자, 돗자리, 담요 등을 꺼내기 시작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찬 바닥에 그냥 앉을 수는 없어서 드림티켓 파일을 꺼내서 깔고 앉아버렸다. 엉덩이가 여전히 차가웠지만 적어도 빈 바닥보다는 나았다... 내 인생에 다음 일본행사가 있을까 싶지만 다음에 갈 일이 있으면 절대 낚시의자를 지참할 예정이다. 필수품이다.
인고의 5시간 끝에 드디어 입장했다. 입장하자마자 쁘띠온리 주최부스에서 기념앤솔과 기념 씰북을 사고 곧장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입장 후 약 한시간만에 모든 부스를 클리어했다. 딱 하나 빼고... 내 존잘님 배포본부터 받으러 갔어야 하는데..ㅠㅠㅠㅠ난 바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행사는 최고였고, 나는 꽉찬 가방과 벅찬 감동을 느꼈다. 세상에 나 정말 성공한 인생같다. 17은 내가 잡은 인생 최대의 메이저가 맞다. 일본에서라도 행사 열린다는게 어디야. 내 덕생에 지금껏 이런 커플 없었다. 죄다 전국 아니 전세계에서 나 혼자 파고 있었다고.
내꺼 다 샀다는 안심을 뒤로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친구책을 사야하니까! 다행히 한 권 빼고 그들이 원한 책을 모두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거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2시였다. 점심을 먹고싶었는데, 정말 그 주변에 아무것도 없더라. 킨텍스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던데. 원래 전시관 주변에는 다 뭐가 없는걸까. 어쩔 수 없이 이케부쿠로로 돌아와서 밥을 먹었다. 친구 말로는 오다이바에 리벤지를 하란다. 무슨 리벤지를 하냐고 물으니 '아무것도 없는 빅사이트에 대한 리벤지..?' 그 후 나는 정말 빅사이트에 리벤지를 하러(?) 오다이바를 다시 찾았다. 허허 이 무슨 니카이도 야마토 복수하는 소리란 말인가....
다음 이야기... 키치죠지 성지순례? 사실 개 구경! 외 여러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 유리씨:12월 동생의 일본여행에서 동생이 이오리 인형뽑는것을 도와준 친절한 크레인고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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